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지 S. 패튼 (문단 편집) === 전간기의 행적 === 1919년 그는 임시 대령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정규 소령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차 대전 종전 후 그를 늘 높이 평가해주던 퍼싱 장군이 퇴역한 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군내에서는 버린 자식 취급받았다. 불같은 성격에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안하무인적 태도는 주변사람들과의 마찰을 항상 불러일으켰으며,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도 포기한 상태라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전쟁광이란 타고난 성격이 전간기의 군축 분위기와는 상극인지라 별 수 없었다. 거기에 여러차례 음주사고에 불륜소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아돌프 히틀러]]처럼 단 것에 광분하여 섭식장애 증세까지 보여 건강까지 망치며 상층부의 골치를 썩였다. 1922년 있었던 [[니커보커 극장 붕괴사고]] 당시, 해물 알러지로 고생중에도 경찰과 군인들을 지휘, 사람들을 구조했다. 게다가 사생활에 있어서도 [[취미]]로 [[승마]]나 [[요트]] 등 돈이 많이 드는 귀족 취향의 것들을 즐겼는데, [[세계 대공황]] 시기에도 그 짓을 하고 다녔다. 그쯤 되자 상관이든 동료들이든 부하들이든 누구나 그를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얼마나 승마를 좋아했느냐 하면, 복장 규정을 무시하고 '''전투복 하의 대신에 [[기병]] [[병과]] 등 [[말]]을 타는 인원 이외엔 착용이 금지되어 있는 육군 기병용 승마 바지를 입고, 손에도 승마용 채찍을 들고 다녔을 정도'''였다. 기병 병과 출신이기 때문에 기병 피복을 입는 것이 아무 문제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피복은 자신의 병과가 아니라 근무지와 직책 등에 따라 규정된다. 당연히 기병 병과라고 아무 때나 기병 피복을 입을 순 없다. 이는 항공 조종 병과 출신 장교가 자기 직책이 뭐든 비행복을 아무 때나 입을 수 있다는 주장과 동일한데, 조종 출신인 [[공군참모총장]]의 일상 근무 복장이 [[근무복|약정복]] 혹은 [[전투복]]인지 비행복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일선 비행단에서 비행복을 입고 다니는 군인들은 상황 걸리면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패튼은 자기 부하들에게 전장에서도 장교 계급장을 가리지 못하게 하는 등 FM을 강요했으면서, 기병 피복 착용 뿐 아니라 자신의 방탄모에 '''4성 계급장도 규정과 어긋나게 멋대로 [[Fuck You|ㅗ자 모양]]으로 붙이고, [[개리슨모]] 계급장도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부착'''하는 등 내로남불이 심했다.[* 당장 문서 상단에 있는 사진이 바로 그것.] 1931년 일명 [[보너스 군대]](Bonus Army) 사건 당시 상당한 오점을 남겼다. [[세계 대공황]] 시기 연금 지급을 요구하는 제대군인 시위대에 전차와 보병을 '''[[착검돌격]]'''을 시켜서 무려 사상자 100여명이 나온 것.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대선에서 참패했고, [[더글러스 맥아더]]는 예편 후에 필리핀 군사고문으로 떠났다. 말년까지도 패튼은 이 사건에 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당시 제대군인 시위대 중에는 1차대전 때 전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진 패튼을 구해준 조 안젤로(Joe Angelo)라는 장병도 있었다. 패튼은 이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켰다.[* 'General Patton'에 따르면 패튼은 자신을 구해준 고마움 때문에 전후에 이 사람의 경제적인 도움 요청을 여러번 도와줬는데 그런 그가 시위대를 대표해서 자신을 설득하러 온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쫓아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